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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흑백으로 흐른다. <로마>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1970년대 멕시코시티의 가정과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삶의 조각들을 감성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예술성과 현실성, 감정과 구조의 완벽한 조화를 경험하세요.
🎞️ 영화 줄거리 요약
1970년대 멕시코시티의 ‘로마’ 지역. 중산층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클레오는 조용하지만 헌신적인 여성이다. 그녀는 가족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으며, 주인의 아이들에게 친엄마보다 더 가까운 존재로 살아간다. 그러나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이 집안에는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남편은 출장이라며 집을 떠나고, 실은 다른 여자가 있었다. 가정은 점점 무너져가고, 클레오의 삶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클레오. 그는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꿋꿋이 아이를 지켜내려 한다. 동시에 1971년 멕시코시티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코르푸스 크리스티 학살'이라는 참사 속에서 클레오와 가족은 크고 작은 생의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클레오는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지키고,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삶을 택한다. 영화는 거창한 드라마 없이, 오히려 ‘삶 그대로’를 기록하듯 따라가며, 눈물과 위로를 동시에 남긴다.
1. 흑백 속의 진짜 삶 – 감정을 더 진하게 만드는 연출
<로마>는 전편이 흑백으로 촬영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영화보다 ‘감정의 색’이 풍부합니다. 흑백이라는 제한은 오히려 인물의 표정, 풍경의 깊이, 사운드의 질감을 더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클레오가 걸어가는 거리, 조용한 집 안의 파편들,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적막한 감정이 흐르는 장면들—이 모든 것이 한 폭의 사진처럼 마음에 새겨집니다.
감정을 억지로 자극하지 않고도, 오히려 절제 속에서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영화는 ‘조용한 명작’이라는 수식어에 가장 어울립니다. 카메라는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어느 순간 관객은 클레오의 감정과 삶에 깊숙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만의 연출 미학이 만들어낸 마법입니다.
2. 여성의 시선, 보이지 않는 존재의 무게
이 영화의 중심은 명백히 ‘클레오’입니다. 그녀는 가정부이지만, 이 집안의 중심이며, 모든 것을 지탱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회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족은 그녀를 아끼지만, 결국엔 ‘고용된 사람’이라는 경계가 존재하죠.
영화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계급, 특히 **여성의 이중적 소외**를 담담히 드러냅니다. 클레오 자신도 여자로서 존중받지 못하며, 아이를 가진 몸임에도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이 영화는 여성 서사의 전형을 따르지 않지만,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여성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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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족, 피보다 진한 감정의 연결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클레오와 그녀가 일하는 가정은 법적, 혈연적으론 아무런 연결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 클레오가 아이들을 구하고 오열하는 장면은 그 누구보다 강한 모성애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주인과 종의 경계를 넘어서, **진짜 가족의 의미**를 체현합니다.
이 영화는 ‘가족이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라는 정의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제시합니다. 클레오와 엄마 소피아는 둘 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성이며, 그 안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동료가 됩니다. 이런 따뜻한 연결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 한구석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4. 현실과 역사가 교차하는 순간 – 코르푸스 크리스티 학살
1971년,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코르푸스 크리스티 학살'은 영화의 전환점이 됩니다. 시위대와 민병대가 충돌하고,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는 실제 사건이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그 혼돈 속에서 클레오가 출산을 하게 되며, 개인의 드라마와 역사의 격변이 겹쳐지는 장면은 압도적입니다.
이 장면은 단지 충격적인 장면이 아닌, **개인과 사회가 연결되는 순간의 진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평범한 개인이 어떻게 거대한 사건의 한 가운데에 놓이는지를 보며, 영화가 다루는 스펙트럼의 깊이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역사와 인간, 사회와 개인의 교차점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한 순간입니다.
5.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 걸작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신의 유년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그는 어릴 적 자신을 돌보던 가정부 ‘리보’를 모델로 클레오라는 인물을 창조했고, 직접 촬영, 각본, 편집까지 도맡으며 ‘감독 한 사람의 순수한 기억’이 담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실제 촬영은 전부 자연광으로 진행되었고, 배우들에게 대본을 제공하지 않고 **장면 직전 대사를 귀띔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연기 디렉션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영화는 리얼리티와 즉흥성, 감정의 진정성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이 되었죠.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고, **넷플릭스 최초의 예술 영화 명작**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다음 편 예고
Part 3. 더 페인티드 버드 (The Painted Bird) – “전쟁이 아이를 삼킬 때, 인간은 무엇을 남기는가?”
잔혹함 속에서도 눈부신 시적 연출이 돋보이는 충격적 성장 영화. 계속 이어집니다.